▶ 기아타이거즈에 새로 온 외국인 투수의 다리가 심상치 않다
▶ 엔하이픈 IP 기반 "다크 문", 이번엔 애니메이션으로 나온다
일본 영화계가 뜨거운 신작의 등장에 들썩이고 있다. <귀멸의
칼날>이 바로 그 작품이다. 숯을 파는 집안의 착한
아이 탄지로는 어느날 도깨비에게 가족을 몰살당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동생마저 혈귀로 변해버리고 만다. 동생을 인간으로 돌려놓기 위해, 그리고 가족의 복수를 위해 귀살대에
들어간 탄지로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23권으로 완결된 <귀멸의
칼날>은 애니메이션화와 함께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2019년을
가장 뜨겁게 만든 일본 망가로 꼽혔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로 주춤했던 영화관에 <귀멸의
칼날> 극장판이 돌풍을 만들고 있다.
워낙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인기작이었으니 <귀멸의 칼날>의 인기는 예정된 것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어떤 기록을 만들고 있는지, 또 그 배경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l 귀멸의 칼날이
세운 기록들
1.
<원피스>
잡은 <귀멸의 칼날>
일본 오리콘에서 만화 판매량 집계를 시작한 2006년 이후 단 한번도 1위 자리를 내놓지 않았던 작품이 있다. 바로 <원피스>다. <강철의 연금술사>, <진격의 거인>, <일곱개의 대죄>,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등 시대를 풍미한 작품들이 <원피스>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모두 <원피스>를 1위에서 끌어내리는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2019년, 처음으로 <원피스>를 왕좌에서 끌어내린 작품이 바로 <귀멸의 칼날>이다. 2019년 <원피스>의 판매량은 약 1,013만권, <귀멸의 칼날>은 약 1,205만권이었다.
그리고 2020년, <원피스>가 2011년 세운 후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연간 판매량 3,799만권을 3,819만권으로 갱신했다. 그런데, 이 기록이 불과 2020년이
된지 4개월만에 세운 기록이었다.
2.
1억부 클럽 : 4번째로 적은 단행본, 21세기 만화 3위, 역대 최단기간.
<귀멸의 칼날>은 일본 만화 누적 판매량을 볼 수 있는 망가젠칸에서 확인해보면 1억부 클럽에 들어간 17작품 중 4번째로 적은 단행본을 가진 작품이다. 가장 적은 발행권수는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가 14권, <북두의 권>이 15권이다. 그 다음은 ‘망가의 신’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이다. <철완 아톰>은 21권으로 완결되었는데, 1950년대~60년대에 연재한 작품이다. 앞선 두 작품 역시 20세기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귀멸의 칼날>은 21세기에 연재한 만화 중에서는 판매량 3위에 랭크되어 있는데, 총 2001년 연재를 시작해 2016년 완결지은 <블리치>가 1억 2천만부(74권), 2009년에 연재를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진격의 거인>이 1억부(32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귀멸의 칼날>은 2010년대에 발매된 만화 중 유일하게 1억부 클럽에 들어간 작품이다. 연재 후 3만에 1억부를 기록한 <귀멸의 칼날>은 역대 최단기간 1억부를 달성했다.
3.
일본 영화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까지 잡았다
일본에서 그동안 오프닝데이 최고 입장관객수는 <겨울왕국>2가 가지고 있는 61만 2,636명이었다. 그리고, <귀멸의 칼날>은 67만 3,220명으로 이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리고 이틀째 되는 날, 이 기록을 89만명을 기록하며 전날 기록을 갈아치웠다.
오프닝 첫주 주말 기록은 <매트릭스: 리로디드>가 세웠던 22억엔을
앞질러 23억엔을 기록했고, 4일차까지 60억엔에 근접하는 스코어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웠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10일차에 수익 100억엔을 기록, 불멸의 아성이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세웠던 기존 최단기록 25일을 15일이나 단축하는데 성공했다. 일본에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극장 티켓
수익 100억엔을 기록한 건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이후 세번째 기록이다. 그리고 15일차만에 관람객 1천만명을
달성하면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가지고
있던 역대 최단기간 기록을 모조리 갱신해버렸다.
l ‘귀멸’이라는 문화현상
이런 배경에는 <귀멸의 칼날>이라는 문화현상이 큰 역할을 했다.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귀멸의 칼날> 대사가 인용되는가 하면, <귀멸의 칼날> 극장판 개봉 이후 뜬금없이 <은하철도 999>의 모티프가 된 이와테 경전철을 모티프로 한 문진이 영화 공개 이후 매출이 3배가 올라가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귀멸의 칼날> 극장판의 주 무대가 되는 무한열차가 이 문진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원피스> 천하였던
일본의 인기작 사이에서 <귀멸의 칼날>이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도 함께 얻게 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문화현상은
단순히 일본 내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대만으로도 이어져 <귀멸의 칼날> 극장판이 대만에서 개봉한 영화중 가장 빠르게 150억엔의 수익을
올렸고, 태국에서도 단행본이 매진사례를 빚을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한국에서는 <귀멸의 칼날>을 베낀 '귀살의 검'이라는 게임이 서비스를 하려다가 뭇매를 맞고 서비스를 중단한 적도 있었다. 부끄럽지만, 그만큼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진 작품이라는 말이다.
2020년 1월 9일부터 15일까지는 아예 일본에서 판매된 만화 중 1~10위가 모두 <귀멸의 칼날>이었다. 이미 이렇게 팔렸는데 영화가 흥행을 이어가면서 일본 서점에서는 “그동안
그렇게 불티나게 팔렸는데, 또 이렇게 팔린단 말인가”는 기쁨
섞인 탄식이 나올 정도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도쿄에 위치한 제지회사 ‘오지 제지’에서는 “만화
인쇄용지 생산이 크게 늘어 몇 년간 최고 매출액을 경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라는
악재 속에서도 만화 인쇄용지 판매 매출액이 하락폭을 낮추고 있다”고 전했다. 말 그대로 ‘귀멸’이라는
현상이 정치, 사회, 산업에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l 코로나19, 위기 or 기회
<귀멸의 칼날> 극장판이 이렇게까지 흥행하게 된 데에는 애니메이션으로 포텐셜이 폭발한 ‘귀멸’이라는 현상이 든든한 기초가 되어준 가운데,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팬데믹 현상이 크게 한몫을 했다. 먼저 2020년 상반기에 <귀멸의 칼날>이 기록한 3천 8백만부라는 놀라운 판매기록은 코로나19로 인해 놀 거리를 찾던 사람들이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검증된 콘텐츠였다는 점이 주효했다. 동시에 애니메이션이 넷플릭스 등에서 스트리밍을 제공하면서 단단한 독자층, 시청자층을 형성했고,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전 연령층이 즐기는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물론, <귀멸의 칼날>역시 폭력성과 잔인한 묘사 등으로 일본에서도 “어떻게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귀멸의 칼날>을 대체할 수 있는 작품이 없다는 점은 명확했다. 모두가 ‘귀멸’을 보고, 모두가 ‘귀멸’을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2020년 9월 코로나19로 제한되었던 극장 내 관객 숫자가 100%로 풀린 것도 크게 한몫을 했다. 놀란 감독의 <테넷> 외에는 이렇다할 블록버스터가 없었던 극장가는 '대작'들이 개봉을 연기하거나 넷플릭스로 시선을 돌렸다. 2020년 전세계 극장가에는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 없었는데, 마침 그 시기에 <귀멸의 칼날> 극장판이 걸렸다. <테넷>도, <뮬란>도 해내지 못했던 걸 '귀멸'이 해냈다. 그동안 관객을 모을 수 없었던 극장가에서 말 그대로 ‘영혼까지 끌어모은’ 스크린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귀멸의 칼날>은 오프닝 데이에 신주쿠에 위치한 12개 스크린 중 11개에서 총 40회 이상 상영하는 등 극장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 결과, 우리는 일본의 모든 흥행기록을 모두 과거의 일로 만들면서 단독 질주하고 있는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아직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에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멸의 칼날>이라는 현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12월에 개봉을 예고하고 있으니, 다시 한번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