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웨이브 합병, 공정위 승인으로 한발 더 나갔다
지난 수년 간 될듯말듯 했던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마침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건부 승인을 받으며 국내 OTT 시장의 지형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넷플릭스가 압도적으로 치고나가는 가운데, 국내 OTT가 통합해야 경쟁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의견이 많았는데요. 다만 실제 합병 성사 여부는 티빙을 운영중인 KT의 최종 동의 여부를 비롯한 복합적 요건에 따라 결정될 전망입니다.
티빙 2대주주인 KT 스튜디오지니는 13.5%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데, IPTV 서비스와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그룹 내 기타 사업에 끼칠 영향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KT는 현재 IPTV 1위 사업자인데, OTT 서비스 확대가 IPTV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만약 양사가 합병하게 되면 단순 MAU 합산으로는 1,129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중복 이용자를 감안하면 869만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넷플릭스의 1,450만명에 비하면 60% 수준이지만, 시청시간 기준으로는 티빙과 웨이브를 합쳐 46.7%로 넷플릭스의 39%보다 길어 실질적인 영향력 확대가 가능하지 않겠냐는 예측이 나옵니다.
여러 갈래로 쪼개져 중복투자에 효율적이지 못한 서비스가 합병하게 되면 넷플릭스에 맞서기 위한 대항마가 될 수 있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비효율적 투자로 2024년 기준 티빙은 710억원, 웨이브는 189억원 적자를 기록했지만, 콘텐츠 제작과 마케팅 비용이 통합되면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고, 티빙과 웨이브가 경쟁하느라 소모되었던 부분도 회복해 수익성 개선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분석도 나오죠.
또한 티빙의 KBO리그 독점 중계는 물론 웨이브의 지상파 콘텐츠가 결합되면 콘텐츠 경쟁력도 국내에서는 크게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공정위는 이와 같은 지점을 모두 면밀히 살핀 후 합병을 승인하면서 요금 인상 방지 조건을 부과했습니다. 2026년 말까지 기존 요금제를 유지하고, 통합 상품을 추가하더라도 기존과 유사한 수준의 가격정책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합병을 승인한 겁니다. 또한 그렇게 합병이 이루어지더라도 요금 결정권 남용, 시장 지배력 확대 시도는 엄정 감시할 것이라는 단서도 붙여두었습니다.
또 하나 합병의 변수가 될 수 있는 건 SKT, KT, LGU+등 통신 3사의 전략적 이해관계입니다. SKT와 SK스퀘어는 웨이브의 최대주주로 티빙 합병에 적극적 지지를 보내고 있고, 통신-OTT 결합상품 출시를 통해 수익증대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반면 KT는 앞서 이야기한대로 국내 1위인 자사 IPTV와 그룹내 콘텐츠 사업과의 이해충돌이 우려되는 만큼 신중한 접근을 꾀하고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KT가 키를 쥐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KT가 언제 동의하는지도 중요하겠고, SKT와 KT가 경쟁보다 협의를 하게 되는 과정도 중요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합병 과정에서 공정위의 규제가 지켜지느냐, 통합 플랫폼이 출범한 이후에는 효율적 시너지를 위한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는지도 주목됩니다.
합병이 성사되더라도 생태계가 달랐던 티빙과 웨이브가 한정된 콘텐츠 제작비 안에서 알력다툼이 발생하지 않을지, 그리고 국내에서 넷플릭스 잡겠다고 글로벌 시장을 놓치게 되는 건 아닐지, 각자 들고 있는 원천IP 콘텐츠 확보를 위한 파이프라인이 구동될 수 있을지 등 다양한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한마디로 합병 자체도 산인데, 그 산을 넘어간다고 순탄한 길이 열리지는 않는다는 이야깁니다.
웹툰계의 입장에서 넷플릭스에 대항력이 있는, 규모가 있는 플랫폼이 생기는 건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IP확장을 위한 조건이 다양해지는 건 언제나 환영할만한 일이니까요. 다만, 티빙과 웨이브가 넷플릭스 수준의 퀄리티 있는 작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 지켜봐야 할 지점이겠습니다.
플랫폼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플랫폼에 실리느냐가 콘텐츠의 확장성을 결정짓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무엇보다 '좋은 콘텐츠'가 많은 것이 중요하겠죠. 열쇠를 쥔 KT의 움직임에 일단 주목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