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과 대형 플랫폼들

얼마전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이라는 법안이 통과됐고, 노동계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졌다는 뉴스를 보신 분들 많으실겁니다. 노란봉투법이 웹툰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이미 수년 전에 스튜디오 리코의 ⟨텃밭부 사건일지⟩가 연재될 당시 PB상품처럼 자회사 웹툰이 연재되는 경우를 주목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는데요. 이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실질적인 문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 고용계약 맺고 웹툰 만드는 노동자들
그런데, 진짜로 '노동자'로서 웹툰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스튜디오에서 스태프로 제작에 참여하는 작가들인데요. 네이버웹툰 역시 이런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노란봉투법이 등장합니다. 노란봉투법의 주요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하청 기업 노동자에 대한 원청기업의 실질적 지배와 결정권을 인정해 사용자, 즉 고용주의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 첫번째입니다. 이전까지는 '하청업체에 맡겼으니 나는 모른다'고 하던 원청업체를 위해 일하는 자회사라면 별도의 기업이 아니라 원청의 연장선으로 보는 거죠. 그동안은 하청은 별도의 법인이니 별도로 생각하라고 요구해왔는데, 모기업의 요구에 맞춘 노동을 한다면 당연히 원청도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상식적인 이야기인데, 이걸 그렇게 오래도록 싸웠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 '공동성명'은 네이버의 주요 손자회사들에 대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이전에는 '자회사니까 모기업의 노조와 별도로 교섭해야 한다'는 논리가 통했다면 이젠 그게 법으로 금지된 거죠. 네이버는 웹툰과 콘텐츠 분야에서 구조도를 보면 네이버의 자회사 웹툰엔터테인먼트가 있고, 웹툰엔터는 네이버웹툰을, 네이버웹툰은 스튜디오리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 역시 네이버 본사와 준하는 수준에서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협상과 처우개선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위의 도표에서 보듯 총 여섯개 손자회사가 여기에 포함됐구요.
물론 여기서 '웹툰 플랫폼'에 연재하는 모든 작가들이 '하청'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일단 네이버웹툰은 실질적으로 리코를 지배하고 있고, 리코에서 연재하는 작가들과 고용계약 또는 용역계약을 체결한 상태로 작업을 하기 때문입니다. 작가들은 저작권을 본인이 소유한 채로 작품을 만들고, 작품을 온라인에 서비스할 권리를 빌려주는 계약을 맺게 됩니다. 때문에 아까 이야기했던 '노동'이 넓어지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필요한 거구요.
그래서 웹툰 창작과 노동권을 직접 연결시키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현재 제도적 관점에서 노동의 개념은 고용계약이 이루어진 후에 이른바 '근로' 하는 것만을 노동으로 보고 있는데요. 고용계약이 일어나야 노동이라고 보는 관점에서는 웹툰 창작을 '노동'으로 보았을 때 '업무상 저작물'로 볼 여지가 생깁니다. 그렇기 떄문에 제도권에서 노동을 보는 관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거기도 하죠. 실제로 현실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이 이미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 노란봉투법 이후 웹툰분야의 뜨거운 감자

그래서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웹툰 분야에서 눈여겨 봐야할 건, 스튜디오 리코의 처우개선 문제입니다. 스튜디오 리코의 주력 작품인 ⟨화산귀환⟩이 장기 휴재에 들어간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요. 네이버웹툰은 그간 '역대 최고 매출액 경신'을 가장 앞단에 적어왔지만, 자회사인 스튜디오 리코의 인센티브에는 그 성과가 반영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화산귀환⟩ 제작진이 이탈해 휴재가 길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죠. 그러나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서 6개월 뒤인 내년 상반기부터는 단체교섭에 자회사가 포함되었습니다. 스튜디오 리코 역시 모기업의 인센티브와 준하는 수준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입니다.
카카오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카카오는 2024년 12월 기준 카카오페이지 지분 66.03%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100% 자회사만 22개를 보유하고 있고, 지분율 50% 이상 자회사는 17개, 지분율 50% 미만 관계사는 3개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분율 절반이 넘는 기업 총 39개와 단체교섭을 준비해야 할 수 있는 상황인 거죠.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권리가 지켜져야 그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노동자들을 구제하는 것 역시, 웹툰작가의 노동자성을 획득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아니, 어쩌면 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서 어디다 쓰겠어요? 그래서, 지금 근로계약을 맺고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지금 네이버웹툰과 공동성명, 카카오와 카카오 노동조합의 향후 협상이 중요해질 겁니다. 엔터테인먼트는 정치나 제도와 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사실은 이렇게나 가깝습니다.
대형 플랫폼의 자회사들은 대형 플랫폼과 계약하고 연재합니다. 유통처와 공급처가 같은 건데, 넷플릭스 등장 이전 미국에서는 제작사가 배급사와 극장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이걸 소위 '파라마운트 법'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유통사의 권한이 너무 막대해지는 걸 막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제도적으로 논의하기 어렵고, 콘텐츠 분야에서 이걸 막는게 맞는지에 대한 논의도 아직 진행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을 멈출수는 없죠. 더군다나 이미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권리는 지켜져야 하고요.
그래서 자사가 개발한 IP를 직접 만들어 자사 플랫폼에 유통하는, 일종의 PB상품처럼 작품을 만들어서 자체유통하던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질 겁니다. 당연히 고민했어야 할 문제고, 앞으로 더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플랫폼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 때, 제대로 된 경쟁이 될 수 있을까? 에 대한 답을 내놓기 위한 준비과정이 대형 플랫폼의 자회사들의 단체교섭이 될 겁니다. 아직 노동과 창작의 개념을 뒤섞기에는 제도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있는 노동권을 잘 지키는 것이 선행되고, 그 기조 안에서 노동의 범위를 넓혀나가야 할 겁니다. 이후 웹툰작가의 노동자성을 논하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일한 작가들의 처우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