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박재동에 "피해자에게 5천만원 배상" 확정
성폭력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피해자가 법원에 제출한 자료를 무단으로 유출, 2차가해를 한 박재동씨에게 대법원이 "피해자에게 5천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기존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소송 과정에서 취득한 피해자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건네 소셜미디어에 게시하도록 한 행위가 명백히 불법이라고 본 겁니다.
지난 5일 대법원 2부에서는 이태경 작가가 박재동 화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피고인 박재동씨가 낸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2심에서 박씨가 이태경 작가의 비공개 자료를 유출, 이를 통해 온라인 상에서 비방과 조롱 등 2차가해가 유발된 행위에 대해 5천만원의 위자료 지급을 명한 2심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지난 2018년 이태경 작가는 "2011년 8월경 주례를 부탁하러 갔다가 박씨로부터 치마 아래로 손을 넣어 허벅지를 쓰다듬는 등 성추행을 당했다"고 SBS에 제보했습니다. 당시 박씨는 SBS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요. 이 소송 과정에서 이태경 작가가 피해 입증을 위해 제출한 통화 녹취, 카카오톡 메시지 등이 박씨를 통해 페이스북 페이지 "With 박재동 아카이브"라는 페이지를 운영하던 박모씨에게 유출됐습니다.
이 자료들은 편집, 왜곡되어 2019년 8월부터 9월까지 소셜미디어에 게시되었는데, 박재동씨의 지인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도 2020년 6월부터 8월까지 이 게시물을 소셜미디어에 게시했고, 박씨 역시 이 글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이태경 작가는 2019년 5월 정정보도사건 증인신문 당시 "증거물이 해당 페이지를 통해 법원 밖으로 빠져나가 저를 장외 공격하는데 이용되고 있다"며 2차가해를 우려했지만 법원의 요청으로 자료를 제출했고, 결국 이 자료가 소셜미디어에 유포되면서 심각한 인신공격으로 이어졌습니다.
정작 이 정정보도사건은 1심과 2심 모두 원고 이태경 작가의 증언 신빙성이 인정되어 청구가 기각됐고, 2021년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확정판결이 나온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이태경 작가는 페이스북에 게시된 내용 이후에 이어진 2차가해에 대한 소송을 준비했고, 지난 2024년 1심에서 "박씨가 피해자에게 5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해 승소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가 정정보도사건 수행을 도운 박모씨(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자)에게 소송 자료를 공유, 페이스북에 공개하도록 했거나 최소한 이를 방조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또한 "개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의 방식과 내용은 개인의 인격주체성을 특정짓는 사항으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보호대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피고(박재동)는 사적 대화가 포함된 소송 자료를 페이지 운영자 박씨에게 공유, 다수의 사람에게 누설하게 해 원고(이태경 작가)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또는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했다"고 판시했습니다.
박재동씨의 행동에 대해서는 "피고는 소송자료 중 일부분을 발췌, 전체적인 취지에 반하거나 이를 왜곡하는 글을 통해 원고의 진술 피해사실이 허위인 것처럼 게시해 원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는 정당한 방어권 행사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적인 대화를 짜깁기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왜곡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취지입니다.
지난 8월 열린 2심에서도 1심 판결이 유지됐습니다. 2심 재판부 역시 박모씨 등의 주관적 평가가 포함되어 있어 오인될 수 있도록 작성되었다며, 게시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원고가 주장하는 피해사실이 거짓이다'라는 인상이 들도록 유도했다고 봤습니다. 이 내용이 원고의 품성이나 신용등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침해하는 등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박재동씨 측은 "사회상규에 위반되지 않는 정당행위"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소송자료 제공, 게시물 공유의 동기, 목적, 횟수, 경위, 게시물 내용, 다른 수단의 대체 가능성을 모두 살펴보면 정당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피해자의 명예를 실추시키겠다는 의지가 있었다고 본 겁니다.
대법원에서도 "심리불속행 사유에 해당하거나 법률상 이유가 없다"며 1심과 2심의 법적 판단이 정당했다고 보고 박재동씨의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또한 소송 비용 역시 피고인 박씨가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이번 소송을 이끈 로피드법률사무소의 하희봉 대표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확정판결은 성폭력 피해자가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제출한 자료가 가해자의 공격수단으로 악용되는 '법적 절차 내 2차가해'에 사법부가 제동을 걸었다는데 의의가 있다"며 "소송 방어권이라는 명분으로 피해자의 내밀한 개인정보를 유출하거나 여론전에 이용하는 행위가 위법임을 최고법원이 확인했다는 점에서 향후 유사한 형태의 2차가해를 예방하는 중요한 판결"이라고 말했습니다.
증거로 제출한 대화내용이 무단으로 유출되어 제3자가 소셜미디어에 게시한 행위가 불법행위라고 인정된 최초의 사레라는 점도 의미가 있습니다. 2018년 시작된 사건이 아주 오랜 시간에 거쳐 결과적으로 이태경 작가의 승소로 끝났습니다.
이태경 작가는 "긴 법적공방이 의미있는 결실을 이루어 기쁘다"며 "이번 확정판결이 용기를 내 피해를 말한 이들이 법의 보호 안에서 안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길 바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