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렙이 모든 걸 끝장냈다" 프랑크프루트 국제도서전에서 나온 이야기들

출처 = 유튜브 영상 캡처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만화 관련 대담이 열렸습니다. 미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패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 가운데 각국의 시장 현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패널은 스콜라스틱 출판사의 데이빗 세일러(David Saylor)씨, 프랑스는 뒤피스(Dupis) 출판사 소속 더그 헤드라인(Doug Headline), 스페인은 노르마 에디토리얼(Norma Editorial)의 루이스 마르티네즈(Luis Martinez), 독일에선 울트라버스(Ultraverse)소속 조아킴 캅스 박사(Joachim Kaps)가 패널로 이야기했습니다. 좌장은 코믹스비트 편집장 하이디 맥도널드(Heidi Macdonald)가 맡았네요.
* 미국 : 아동 청소년과 일상물이 이끈다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데이터를 보면 미국 출판만화시장은 점점 오랫동안 인기있던 작품들이 팔리는 전형적인 '오래된' 시장으로 보입니다. SWI에서 더이상 북미 시장 정보를 수집만 하고 기사를 내보내지 않는 건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인데요. 이 데이터와 반대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데이빗 세일러는 "미국 그래픽노블 시장은 아동 청소년 작품이 지배하고 있다"며 "미국 그래픽노블 시장의 절반 가량이 아동청소년"이라고 전했습니다.
미국의 장르 분류중에 'Slice of Life', 우리말로 번역하면 '일상툰'이 가장 가까운 장르인데요. 이 장르가 청소년들의 웹툰 유입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친구들 간의 우정, 분노 등의 감정, 실패와 가정에서의 문제해결 등 본인의 경험과 가장 가까운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웹툰 초기에 일상툰이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을 생각하면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지에서 분석하고 있는 핵심 독자층은 중학생 정도의 연령층이고, 이들을 위한 단행본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으며, 웹툰에서는 공감을 중심으로 한 일상물(Slice of Life)이 주효했다는 분석입니다. 이는 미국 만화 유통시스템이 크게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기존 NPD Bookscan 등에서 집계되는 데이터는 전통적인 만화 판매창구로, 코믹북 스토어를 중심으로 한 유통체계입니다. 마블과 DC코믹스가 탈퇴한 이후 데이터상으로는 독자 노령화가 진행중이라고 분석됐는데, 실제로는 코믹북스토어 등 전통적 판매창구가 '구식'이 되고 있는 중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 프랑스 : 양극화된 독자들
프랑스 시장은 코로나19 시기에 최고점을 달성하고, 이후 약간의 하락세를 겪고 있습니다. 2년 주기로 발행되는 ⟨아스테릭스⟩와 같은 든든한 인기 타이틀을 중심으로 꾸준한 판매를 보이고 있다고 하네요. 다만 전체 판매량의 절반 정도는 일본 망가가 차지하고, 웹툰 단행본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새로운 파이를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큰 특징은 독자 양극화인데, 일본 망가와 웹툰 단행본 독자, 미국 코믹스 독자, 프랑스-벨기에 만화 독자로 나뉘어 각 장르간 교차 독자가 거의 없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독자의 양극화가 이뤄지면서 상대적으로 젊은 독자들이 많은 일본 망가, 웹툰 단행본 독자들이 시장을 이끌고, 상대적으로 소수인 미국 코믹스와 프랑스-벨기에 만화 독자들이 또다른 시장을 이루면서 시장 자체가 쪼개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하네요.
프랑스-벨기에 만화는 연간 6천여종이 발행되는데, 이를 두고. 과도한 신간 발행 종수를 줄이고 각 프로젝트의 홍보와 투자를 강화해 서점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양성은 살렸지만, 다양성만 살아남은 시장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완전히 분절된 시장이 되어버린 프랑스의 해결책은 무엇일지도 한번 살펴보면 우리에게도 인사이트가 있겠습니다.
* 스페인 : 망가와 웹툰이 확대하는 시장
스페인 시장은 유럽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만화가 성장하는 시장입니다. 이걸 이끄는 건 일본 망가와 한국의 웹툰인데요. 14세 이상 스페인 인구의 13.2%가 만화를 읽는다고 답했고, 성장세 역시 모든 출판 카테고리 중 가장 빠릅니다. 절반 가량이 망가일 정도로 발행 종수는 망가에 치중되어 있는데, 한국 웹툰이 단행본으로 발행되면서 새로운 "빅 플레이어"로 떠오르고 있다고 마르티네즈는 말했습니다.
전통적 코믹스 시장에서는 연속된 시리즈보다 한권으로 끝나는 단행본(One-Shot) 또는 합본을 선호하는데, 망가에서는 장기 시리즈물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하네요. 이건 웹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시리즈 판매가 이어지면 높은 판매고를 형성하는데 유리한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죠. 망가 중심의 시장에 대해 부정적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스페인에선 오히려 새로운 독자를 대거 유입시키는 효과가 있어 긍정적 효과가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네요.
* 독일 : 만화의 인식을 바꾼 망가와 웹툰
독일은 전통적으로 만화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시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망가와 웹툰이 대거 유입되면서 지난 10년간 시장이 3배 규모로 성장했다고 하네요. 서점에서 판매되는 만화책의 80%가 망가와 웹툰일 정도로 아시아 콘텐츠의 힘이 아주 강력하게 발휘되고 있다고 해요. 특히 캅스 박사는 "⟨나혼렙⟩이 모든걸 끝장냈다(⟨Solo Leveling⟩ killed everything)"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보였습니다. 특히 100권이 넘는 시리즈물보다 높은 매출액을 올리기도 했다고 하는 걸 보면, 독일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은 건 단연 ⟨나혼렙⟩으로 보입니다.
또한 망가와 웹툰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 새로운 독자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망가가 컬러로도 나오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네요. 오직 재미로만 콘텐츠를 판단하고 있다고 해요. 다만 물가상승이 가파르게 이어지면서 젊은층이 쉽게 선택하기 어려울 정도로 만화책이 비싸지고 있고, 유럽 작가들의 설자리가 위태로워지는 만큼 "유럽형 망가"를 만들기 위한 범유럽 망가잡지 "Manga Isish Show"등을 창간해 지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독일은 아직 대도시를 제외하면 디지털 인프라 구축이 미흡해 온라인 독서환경이 좋지 못하고, 이때문에 물리 서적이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는 시장이어서 전통시장 양상을 띈다고 하네요.
국가별로 살펴보니 꽤나 흥미롭습니다. 웹툰에 대한 선호도 높아지고 있고, 특히 여전히 미국과 유럽등 서구권에서는 '소장'에 대한 욕구가 커 단행본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앞으로 단행본을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낼지, 또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한 도전을 이어갈지 생각해봐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