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애호가] ① 곽경수의 딸이 되다.


불편 애호가의 시작


악취는 향기보다 오래 남는다. 만화는 긍정적인 감정으로만 즐기는 것이 아니다. 도덕관과 윤리관, 세계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지독한 불편함이 만화의 재미가 되기도 한다. 냄새는 대개 휘발되는 이미지와 다르게, 농축되는 느낌이 있다. 앞으로 남길 만화 리뷰는 ‘불편 농도’로 측정할 것이다. 농도는 1부터 100의 퍼센티지(%)로 표현하려고 한다. 완성도, 재미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 만화책이 ‘나의 근간을 흔들 만큼 불편한가’를 기준으로 작성할 예정이다. 만화책을 읽을 때, 20대 중후반 여성으로서 다른 이에게 추천할 수 없는 불편한 재미가 있는 책들이 있었다. 한 번 잡숴보시길.


1화 마영신 작가의 <연결과 흐름> : 불편 농도 70%

단편만화집 <연결과 흐름>의 6개의 단편 모두 깔끔하지 않다. 짜증나고 눅눅하고 찝찝하고보다 보면 기묘한 표정이 지어진다. 아는 교수님에게는 추천하지 못하지만, 은밀한 덕질 메이트에게는 조금 망설이면서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가자, 은밀한 덕질메이트는 독자 당신이다.

* 6개의 불편함

<연결과 흐름>에는 6가지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다. 순서대로 <빅맨>, <긴 겨울>, <길상>, <욕계>, <붕괴>, <연결과 흐름>이 있다. 인상깊게 읽은 <빅맨>과 <길상>을 자세히 설명하고, 나머지는 생략한다.

첫 단편 <빅맨>은 크지도 않으면서, 자아가 비대한 머저리 같은 미대 교수 이야기다. 곽경수는 지방대 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 중이다. 어느 날 다른 교수의 조교 김인숙과 술자리를 가지며 자신이 ‘빅맨’ 즉, 성기가 크다고 어필하고, 입을 맞춘다. 조교는 타 교수와 애인 관계였고 곽경수는 협회에서 제명당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곽경수는 복잡한 마음을 응축시켜, 조교의 초상화를 그리고 그 위에 사정을 한다.

이 얼마나 X같은 이야기 일까. 하지만 나는, 곽경수의 딸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더욱 X같아졌다. 지나친 몰입 능력이 역으로 좋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왜 희극은 가까이 볼수록 비극이 될까. 곽경수의 딸이 되어버렸더니 이 이야기는 한도가 없는 비극이 되었다.

<긴 겨울>과 <길상>은 주인공이 같아 마치 이어지는 만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긴 겨울>은 만화가인 주인공이 당구장 알바에 이어 노가다, 신발 장사를 하다 어린이 잡지에서 연재하게 되는 내용이다. <길상>에서는 주인공이 광화문 거리에서 자리를 펴 만화를 그려주는 일을 한다. 노점상 일을 하면서 만화가는 많은 손님들을 마주하고, 그만두기 위해 거리에서 자신의 원화를 판다. 그는 원화가 잘 팔리지 않자, 모두 무료로 나눠준다. 그러다 원화를 가져간 손님의 커피 한 잔으로 다시 만화를 그릴 힘을 얻는다.

* 만화와 거리두기

처음 마영신 작가의 <연결과 흐름>을 읽을 때, 일정 정도의 만화적 거리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한 이기심이었다. 명백한 나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가 아니니까’하고 발을 빼는 그런 이기심 말이다.

그러나 나의 망상력과 현실의 조화가 기묘한 작용을 일으켜 이 작품에 이입시켰다.
‘What if..? (만약에..?)’ 가정법. ‘만약 이러한 상황이 나의 상황이면 어떻게 될까?’라는 가정법은 덕질을 할 때 유용하다. 망상력을 높이며, 종이도 남편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단편 <빅맨>에는 이런 문자 내용이 나온다. 가지고 싶은 물건을 사달라는 딸에 주인공이 답하는 문자이다.

‘다음에 해주면 안될까..? 아빠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림 팔리면 그때 꼭 사줄게..^^;’ 이 내용 뒤에는 아무도 원치 않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곽경수는 나의 아빠가 되었다. XX.

* 곽경수 되기

우리가 예술 작품을 포함한 여러 문화적 컨텐츠를 소비하는 것의 근원적인 이유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다. 카타르시스는 고대 희랍어로 ‘정화’라는 뜻이 있기도 하지만, ‘배설’이라는 뜻이 있기도 하다. 마영신 작가의 작품을 보고 내가 느낀 카타르시스는 ‘배설’에 가까웠다. 끔찍한 찌꺼기 같은 것을 뱉는 일도 카타르시스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곽경수의 딸이 되었고, 수많은 내 주위를 둘러싼 중년 남성이 피어올랐다. 주위 사람들을 생각하고, 내 안의 곽경수적인 자아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쩌면 그렇게 생긴 내가 내 안에 존재하기에, 이런 더러운 내용을 보고도 나는 일정 부분 환희에 찬 것이 아닐까.

* 이 정도면 읽어봐라

이 리뷰를 쓰면서 정말 많이 고쳐 썼다. 그러면서 정말 솔직한 나를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처음에는 ‘머저리 같은’이라는 표현을 쓰는데도 많이 주저했었다. 나처럼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사회에 맞춰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숨기거나, 윤리적인 이유로 매도당할까 봐 걱정한다.

우리가 이러한 만화를 보는 이유는 단순히 유튜브에서 피지 짜기 영상을 보는 것과는 다른 맥락일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욕망이 지향하는 것들은 굉장히 다양할 것이다. 나처럼 곽경수의 딸, 곽경수 자체로서 나의 욕망이 실현될 수도 있고, 더 격정적이고 극적인 콘텐츠의 내용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 솔직해지자.

그래도 만화 앞에서는 솔직해지자. 집 밖에서는 고상한 척할지 몰라도, 즐기는 만화 앞에서는 솔직해지자고 말하고 싶다. 회빙환과 각종 로판물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고, 마영신 작가가 주는 만족감이 있다. 스스로까지 검열해야 하는 통제의 시대에서 우리가 숨 트일 부분은 창작 작품 속 아닐까? 뒤틀리고 고약한 취향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자. 없다면, 솔직해지자. 언제까지 표백되고 뽀용한 세계 속에서 만족했다고 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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