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만화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재미’가 아닐까?


(* 재미의 사전적 정의 :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고 즐거움을 맛보는 마음의 상태.)


필자는 서두로 가장 당연한 말이면서도, 가장 냉혹한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만화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항상 재미있는 만화를 원하고, 재미있는 만화만을 읽고 싶어 한다.”
그만큼 만화에서 ‘재미’는 다른 모든 요소를 전부 다 제치고서라도 반드시 확립해야 하는 조건 중의 하나이다.

혹여, 독자가 재미가 없는 만화를 읽게 되었다면, 그것은 계획된 것이 아닌, 의도치 않은 상황이라 지레짐작해 본다.

‘재미가 존재하지 않는 만화’는 독자가 작품 읽기를 끝내기 전까지 몰입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몰입하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독자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작품의 세계관에 온전히 다다르지 못하였으며, 작품을 관조했다는 느낌으로 만화적 경험이 끝나게 된다.
만화는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에 더 가까우므로, 독자에게 다른 시각 매체(장르)보다 시간과 에너지를 더 많이 요구한다.

그렇기에 독자는 스스로 시간을 들여 만화를 다 읽었을 때, 고유한 ‘만화적 경험’(성취감)을 얻고 싶어 한다.
이 경험은 독자들이 다 같이 똑같은 만화를 봤더라도, 전부 제각각 다르며,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된다.
독자가 얻은 경험은 작가가 작품에서 말하고자 했던, 서사와 세계관을 통해서 전달하려는 것과는 다른 영역의 재미이다.

이 재미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 했던 ‘수동적 재미’가 아닌, 독자 스스로가 만화를 읽고 해석함으로써 얻어가는 ‘능동적 재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만화에서 재미는 크게 2가지의 궤가 같이한다.

만화(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는 재미와, 독자가 만화를 읽고 난 후, 해석과 경험으로 얻는 재미이다.

그렇다면 먼저, 첫 번째 궤인 만화(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는 재미에 대해서 언급하겠다.

기본적으로 만화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는 이야기, 작화, 칸, 말풍선, 효과음/효과선, 컷 분할 등이 있다.
작가는 이러한 요소들로 만화를 설계하고 구성하는 하나의 건축가이자 마법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에 추가로 작가만의 실력과 개성, 특기(발화 방식)가 들어감으로써 그 ‘작가만의 재미’(세계관)가 있는 만화가 성립된다.

하지만,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전달하려 하는 재미를 ‘수동적 재미’로 규정한 이유는 작가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작가만의 재미’가 만화를 읽는 독자와 ‘공명’하지 못하면, 그 재미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진다.

만화 안에 분명히 존재했었던 ‘재미’가 독자와 공명하지 못하여 사라짐으로써 독자들은 그 만화를 ‘재미가 없는 만화’로 인식하게 되고, 결국 그 만화(작가)의 세계관에 몰입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작가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개성이 넘친다 해도 ‘수동적 재미’는 가질 수 있는 한계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두 번째 궤인 독자가 만화를 읽고 난 후, 해석과 경험으로 얻는 재미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 ‘능동적 재미’는 기본적으로 혼자서는 성립될 수가 없다.

전제조건이 우선 ‘수동적 재미’가 존재해야만 하고, 그 수동적 재미에 독자가 공명하였을 때, 발생하는 ‘조건부의 재미’이다.

간단하게나마 이 글에서 이러한 원리에 관해 설명해보자면,
(1) 수동적 재미 o (작품) -> 공명 o -> 능동적 재미 o (독자의 경험, 해석) -> 재밌다
(2) 수동적 재미 o (작품) -> 공명 x -> 능동적 재미 x (독자의 경험, 해석) -> ‘재미없다’
(3) 수동적 재미 x (작품) -> 공명 o -> 능동적 재미 o (독자의 경험, 해석) -> ‘재밌다’
(4) 수동적 재미 x (작품) -> 공명 x -> 능동적 재미 x (독자의 경험, 해석) -> 재미없다

원리를 보면 알겠지만, 전제조건으로 ‘수동적 재미’가 우선시되지만, 결론적으로 만화의 재미를 결정짓는 것은 ‘능동적 재미’인 것을 알 수 있다.

(* 참고로 (3)의 특이 사례를 보면, 작가 스스로가 창작한 작품이 재미없다고 생각하거나 형편없다고 판단해도 ‘공명’이 발생했다면, 독자는 그 만화를 자신의 경험과 해석을 토대로 자신만의 ‘재미’를 부여한다)

결국, 작품에서 재미의 여부를 판단하는 몫은 ‘독자’이며, 이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윗글에서 이러한 원리를 얘기하고 글을 쓴 이유는 단순하게 재미가 결정되는 ‘결과’만이 아니라 작품을 읽는 과정 중에 ‘공명’이라는 원리가 있으며, 결국 만화에서 나오는 ‘재미’는 작가, 혹은 독자에게만 생기는 일방적인 방향성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고 유기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제로 언급했던 만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재미’는 어떻게 보면 예술(장르)을 통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유대와 공감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글을 쓰고, 마무리하며 생각해 보았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나날이 발전할수록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지며 혼재된다.
그리고 이 사실은 만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만화란 무엇인가?, ‘만화’는 ‘여러 장면으로 이어져 이야기 형식을 갖추거나, 사물의 성격을 과장/생략하여 풍자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만화(漫畫)에서 漫은 ‘마음대로, 질펀하게, 흩어지다, 방종하다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漫과 畫(그릴 화)가 합쳐져 엄격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기분 내키는 대로 그린 그림을 의미하는 것이 ‘만화’이다.

그만큼 만화는 자유롭게 광대한 영역에 드나들 수 있는 예술 장르 중의 하나이다.
시대에 따라 만화의 형태 또한 다양해졌다.

시초의 ‘만화’는 선사 시대의 연속된 이미지의 동굴 벽화라고도 언급되기도 한다.

이후로 만화는 근대 만화 형식에서 시작하여, (신문과 잡지에 시사적인 내용으로 1컷 형식, 「CARTOON」 개념의 시초) 짧은 띠 모양의 형상을 가진 만화(신문 연재 형식), 4컷 만화, 연속된 이미지를 묶은 그림책의 형태를 갖춘 만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만화의 「COMICS」의 개념, 히피문화의 영향을 출발로 언더그라운드, 금기, 성인용의 의미를 내포한 「COMIX」의 개념, 윌 아이스너가 창시하고 아트 슈피겔만의 <마우스(Maus)>(1986)라는 작품으로 만화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GRAPHIC NOVEL」의 개념, 문학적 재능을 발산하고 자신들의 즐거움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동인지(Doujinshi/同人誌)」가 서브컬처 내에서 「(만화)동인지」로 재정의 되는 개념,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일본의 「MANGA」의 개념, 그리고 한국에서 <스노우캣>(1998)이란 작품으로 시작된 「WEBTOON」의 개념 등 너무나도 많은 형태로 만화는 파생되고 성립되며 재정의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만화는 지금도 계속 도전하고 있다.

과거에 인터랙티브 소설로 시작했던 「게임 북」(책이란 매체를 이용하여 소설과 게임 형식의 혼합 장르)은 다시 「(만화 형식을 갖춘)게임 북」으로 재창조되기도 했으며, 작가주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 「실험 만화」(세계관을 통한 독자와의 소통뿐만 아니라, 작품 내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만화적 실험을 성취하는 목적을 지닌 만화), 「아방가르드 만화」(형식적으로 만화의 틀까지 붕괴시킬 정도로 급진적이고 도전적인 만화), 「자동기술법 만화」(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여과 없이 쓰는 의식의 흐름을 그리는 만화), 그리고 AI 기술을 이용한 「매체 혼합 만화」(만화 외의 타 장르와의 혼합) 및 「인터랙티브 만화」(독자의 행동이나 선택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콘텐츠 내용과 결과가 달라지는 쌍방향 시스템) 등 끝없이 다양한 형태로 선보여지고 있다.

이제, 앞으로 미래에는 어떤 무궁무진한 만화가 존재하고 나오게 될까?

상상조차 안 되는 형식을 가진 만화가 나올 수도 있고, 너무 많은 것이 혼재하여 장르 자체를 분간할 수도 없는 기이한 혼종 또한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시대가 오더라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만화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2026.04.16
(* 이글은 AI의 도움과 수정 없이 오로지 인간의 사유로만 작성한 글임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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