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만화에 질문하는, 예술만화 잡지 Avantガロ데(아방가로데) 구현성 작가
실험 예술 잡지인 Aㅏvantガロ데는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찾아보려해도, 쉬이 찾을 수 있는 잡지가 아니다. 잡지의 발행인 구현성 작가는 이 잡지를 “Aㅏvantガロ데”는 전위예술을 뜻하는 단어인 ‘아방가르드’와 1960년도 일본의 대안 만화잡지 이름이었던 ‘ガロ’의 단어를 본떠 만든 실험 예술 잡지입니다.’라고 소개한다. Aㅏvantガロ데를 소개하는 까닭은 기록되어야 하는 잡지이기 때문이라는 맹랑한 이유와 더 잘 알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 때문이다.
뾰로롱은 ‘공간’이라는 주제를 가진 26여름호에서 ‘성역(Sanctuary)’이라는 주제를 가진 Aㅏvantガロ데의 2호를 중심으로, ‘성역’과 ‘예술만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았다.
Q1. ⟨아방가로데⟩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구현성 : 사실 이런 인터뷰를 할 때 전 남들이 모르는 얘기를 하는 게 좀 더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미 ⟨아방가로데⟩ 잡지에는 주제나 선정 이유에 대해서도 많이 써놨지만 사실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맥락이 있었어요.
저는 잡지에 참여하는 작가님들한테는 개념적으로도 좀 설명을 드려요, ‘왜 이런 주제를 발제했는가?’ 그리고 ‘어떤 것에서부터 영감을 받았는가?’ 이런 것들이요. 그래서 아방가로데 주제를 발제할 때는 제가 작가님들한테 대외비 문서를 다 돌려요. 이런 이런 프로젝트를 이렇게 해달라, 그래서 이번 ‘성역’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저는 성역이란 건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좀 더 깊게 가자면 ‘창작자의 성역’인 거죠. 예술가의 성역. 자신의 작품이 상업적 맥락으로 읽히든, 어떤 예술적 맥락으로 읽히든, 아니면 자기만의 신념으로 읽히든 간에 작업하는 목적이 있을 거고, 어떻게 보면 그건 자신의 이상이자 꿈일 수도 있는 거니까요. 예술가가 작업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근데 이제 그걸 다 제외하고 본질적인 부분에서, 그러니까 ‘나는 왜 그리는가?’, ‘나는 왜 그려야만 하는가?’, ‘내 삶은 왜 이 길이어야 했는가?’ 등의 맥락을 더듬더듬 가다 보면, 저희는 지금 예술가라는 타이틀, 작가라는 타이틀 갖고 어떻게 보면 약간 다들 꺼드럭거리고 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있는 시간은 끝났거든요. 왜냐면 AI가 점점 더 발전하기 때문에… 작가가 갖고 있는 아우라라든지, 희소 가치 같은 경우가 가면 갈수록 점점 더 플랫해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완전히 평평해져서, ‘나는 작가니까 창작해야 돼’, ‘나는 작가니까 일반인들보다 더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개념이 과거에는 가능했지만 이제는 거의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작가가 아닌 분들 중에서도 감각있는 분들은 AI를 활용해서 웃긴 밈을 만들거나 굉장히 핫한 무언가를 만드는데, 이미 그것 자체가 우리 예술가들이 말하는 창의력이라든지, 우리처럼 수련을 통해서 드로잉을 하거나 감각을 수련하는 과정이 아닌,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위트(창의력)라서 이미 예술이라고 볼 수 있는 거거든요.
정말 웃긴 짤방을 만드는 사람들도 이미 거의 예술가예요.
그러니까 제가 말하는 건, 결국 ⟨아방가로데⟩란 본질적으로 어떤 물음이에요. 당신은 왜 작가여야만 하고 왜 그려야만 하고 왜 창작자여야만 했었고 당신의 삶의 지표들이 왜 굳이 이 방향으로까지 흘러왔느냐에 대한 물음이고, 이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야 근데 난 이것밖에 없었어’, ‘내 삶은 만화밖에 없어’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사람도 있더라는 거죠. 결국 창작이고 뭐고 다 떠나서 본질로 가면 우리는 100년도 안 되는 삶을 살다 가잖아요.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인 거예요.
사실 여기까지가 기획자의 마음, 원하는 희망이지만 이걸 만화적 맥락으로 아주아주 압축하고 간단하게 해서 작가님들, 그리고 작업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본질만 바깥으로 꺼낸 후에 재미있는 게임 같은 룰로 만들어버린 작업이었습니다.
뾰로롱 : 그런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 처럼 만화의 본질이라고 하면 결국 ‘재미’고 저희는 재미있는 걸 만들어야 하니까요. 옛날처럼 막 ‘이거 아니면 안 돼’, ‘예술은 어떤 거야’, ‘만화는 어떤 거야’ 하는 게 의미가 사라지고 어떻게 보면 다시 본질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해요. 재미를 추구하고, 재미를 만드는 것. 그러니까 ‘우리는 원래 이런 재미있는 걸 만드는 사람들이었지’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아요. 비교적 명료해진 것 같기도 해요.
구현성 : 어쨌든 이번 ‘아방가로데 2호’도 성역의 본질에 대해서 사유한 작업이었고 굉장히 압축해서 게임처럼 만들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가운데 있는 네모난 칸을 성역이라고 상정하는 게, 사실 제가 작가님들을 제약에 묶어버리는 거란 말이죠. 이걸 작업할 때 굉장히 거슬린다고 한 사람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이게 진짜 짜증 나거든요.(웃음)
처음 제가 기획을 했을 때 작가님들께 이 성역은 덮어도 되지만 반드시 흔적은 남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덮어도 훼손해도 그대로 둬도 되지만 여기에 ‘그것이 있었다는 것’이 성역이 갖는 의미거든요. 나중에 절필을 해서 그림을 안 그리든 다른 걸 하든 간에… 내가 걸어온 삶을 덮는 시도를 하고 가리고 누군가는 모른다고 해도 너는 이 길을 반드시 걸어왔잖아요. 그러니 아까 말했듯이 본질적으로 자신의 성역, 자신의 삶의 철학, 신념 같은 것들이 ‘성역’의 칸이 되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진지한 맥락들이 섞여 있는데, 어쨌든 ‘성역’은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칸이되 자기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그 칸이길 원했어요.
Q2. ⟨성역⟩의 제목으로서 왜 ‘성역’이라는 단어를 선택하셨나요? 다른 단어로 표현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구현성 : 이게 또 재밌는 게, 성역은 종교적 성격의 단어잖아요. 애초에 국어사전에서 나오는 차가운 단어의 맥락이라기보다 성경에서 나오는 신성한 단어의 맥락이라 ‘성역’에 끌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까 말했듯 누구나 한 번밖에 없는 삶은 신성할 수밖에 없고, 작가의 신념, 철학 이런 것들은 되게 숭고하다고 생각해요. 아방가로데의 작가님들도 다 각자 개성이 넘치시고, 다들 다성적인 작업도 하시거든요.
저는 어떤 만화를 볼 때 진짜 거의 취향이 없어요. 물론 예술적인 만화를 그리지만 오히려 상업적인 만화를 더 많이 보는 편이고, 하지만 그게 어떤 형태든 간에 작가들이 다 자기 삶의 얘기들을 하는 거잖아요.
⟨나루토⟩라는 만화를 보면 나뭇잎 마을의 닌자들 얘기만 나오는 것 같지만 심층적으로 들여다 보면 작가가 하는 말이 보이거든요. 스포일러할 생각은 없지만, 거기 나오는 사건, 캐릭터, 엔딩 그 모든 맥락이 굉장히 인간사예요. 그 마을은 결국 우리 작은 사회, 인류의 사회고 거기서 정치하고 자기들끼리 연대하고 싸우고 근데 알고 보니까 적은 안에 있었고… 그런 이야기들을 작가가 심층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요. ⟨진격의 거인⟩도 마찬가지고요. 마지막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딱 나오잖아요.
그런 것 처럼 ‘성역’이라는 건 작가의 삶이고, 이야기는 결국엔 무언가를 통해서 어떤 것을 덧씌워서 제시하는 거죠. 이야기 밑에는 뭔가 반드시 존재하는데 그런 층위까지 파고들어가는 독자들이 많지는 않겠죠. 하지만 여기까지만 봐도 되게 재미있잖아요. 더 더 더 들어가면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가 이러이러한 얘기를 하고 싶었구나, 삶은 이렇구나, 혹은 자기가 생각하는 무언가는 무엇이구나 할 수 있는 것 처럼 성역이라는 것은 어떤 한 인간의 삶이고 개인적인 삶은 되게 고귀하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지점이기도 해서 어려운 것 같아요.
Q3. 왜 2호를 ‘성역’으로 기획하셨는지 궁금해요.
구현성 : 먼저 1호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1호 주제는 ‘자유’였고요,
그 이유는 딱히 주제가 없어서 자율화한 게 아니라 이것도 실험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냥 다 해 봐라!’. 알다시피 우린 돈도 없지만 4도 인쇄에, 어떤 전위적인 것을 하고 어떤 실험적인 것을 할 지, 아니면 자기가 재밌는 걸 할지 모르겠지만 당신만의 모든 것을 제한 없이 완전히 풀어내 보라는 뜻으로 주제를 ‘자유’로 설정했었고, 이번 2호는 억압되는 룰이 있는 반대급부로 가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주제가 ‘성역’이 되었는데, 제 만화 이후에 들어가는 글에는 AI 관련한 맥락도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동시대 예술이 흘러가는 것을 저도 견지한 바 있기 때문에 썼던 글인 거죠. 시대가 변함에 따라 발전하는 것들, 너무 빠르게 바뀌는 것, 그 속에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맥락을 삶의 철학이나 신념 같은 키워드로 다듬어서 성역이 된 것이고, 그렇기에 너무나도 빠르게 바뀌는 이 시대와 동시대 예술에서 작가들이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런 지점에서 굉장히 종교적이고 신성시되는 본질적인 것(나는 왜 그리는가), 이라는 주제의 맥락을 만화의 칸이라는 룰과 엮어서 나온 기획인 것 같아요.
Q4. 예술만화의 기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구현성 : 되게 어려워요. 올해 저는 지금까지 해 왔던 작품들의 아카이빙, 정리를 하는 중에 있는데 10년간의 궤적을 훑어도 그 범주를 정의내리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아까 말한 큰 맥락으로 따지자면 주류만화 - 대안 만화로 크게 나뉘고, 그 안에서 심층적으로 들어갈 때 어떤 성격을 띈 만화인가에 따라서 인디\언더\예술\실험 이런 카테고리가 나뉘잖아요, 정의하는 단어들도 되게 많고. 과거에 아트 슈피겔만의 ⟨쥐⟩라는 작품의 경우는 스스로 이 만화는 ‘그래픽노블’이라고 말했고, 독자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읽어주길 원했죠.
그건 특정 분류의 만화가 가지고 있는 특정한 인식에 따라 읽히기 싫기 때문에 그런 거죠. 어쨌든 예술만화라는 것을 선뜻 정의하려고 나서면, 특히 지금은 기록되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져야 할 언어인 것 같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주류 만화에 대해서도 무조건 존중하고 있고, 굉장히 많이 보는 편이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예술 만화’라고 굳이 부르고, 그것이 무언인가? 라고 굳이 규정하자면 기존의 당연하다는 것들에 질문하는 것,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예전부터도 계속 얘기해 왔었던 ‘실험 만화’의 맥락도 예술 만화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 같긴 해요.
결국 아까 말한 대로 다시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예술 만화의 큰 측면은 거의 대안 만화 = 예술 만화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기존의 어떤 것에 질문을 던지는 일은 예술이 항상 수행해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만화적 맥락 뿐만 아니라 예술사에서도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가져다 놓고 “야, 이건 샘이야!” 라고 했을 때 다들 개소리다, 말도 안 된다 하긴 했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컨템포러리 예술의 시발점이기도 하다는 점이잖아요.
‘이건 변기야, 왜?’, ‘나는 이래이래 해서 이게 변기라고 생각해’, 그걸 만화의 맥락으로 가져가자면 ‘이게 어떻게 만화야?’, ‘난 이래이래 해서 이게 만화라고 봐’가 되는 거죠. 근데 그렇기 때문에 또 어려운 것은, 이건 지금 저도 글로 정리하고 있는 부분인데 이미지의 병렬, 행렬, 연속적인 장면이 만화라면 파고들어갔을 때 만화의 범주도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거예요. 그럼 더 이상 만화라고 부를 필요도 없게 되는 거죠. 이미 동시대 회화에서도 제가 아는 바로는 거의 4년 전부터 만화적 형식을 회화 안에 많이 차용하고 있어요.
캔버스 안에 만화처럼 다른 시공간의 칸 개념으로 두어 작업하는 거죠. 그리고 단순히 그 표상적인 이미지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만화적 맥락을 사용한 의도를 밝히고 있고요. ‘내 캔버스에는 한 가지 공간이 아니라 여러 시공간이 함께 존재해’, 근데 ‘왜?’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도 작가의 작업노트의 내용과 결합시켜서 굳이 왜 만화적 맥락을 사용했는지 설명하는 거죠. 그럼 그 작업은 무조건 만화인가? 누구는 또 ‘아닌데?’ 라고 할 수 있는 거고, 그래서 엄청 어려운 거거든요.
뾰로롱 : 그래서 추가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었던 게, 이것도 어렵긴 하겠지만 형식을 실험하는 만화를 그릴 때는 만화의 범주를 자기 안에서 어느 정도는 정해야 하잖아요. 그렇다면 예술 만화의 가장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 존재할까요?
구현성 : 대척점에 있다는 것은 반대되는 개념인 거겠죠? 반대라면 정말 심플하게 이야기했을 때 상업만화겠죠. 근데 사실은, 아방가로데에도 적었지만 동시대의 모든 예술은 지금 장르가 혼합되고, 섞이고, 완전히 왔다 갔다 하면서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어요. 방금 심플하게 말하면 상업 만화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젠 더 이상 그것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이제는 상업 만화도 굉장히 예술적이거든요. 이것도 과거였으면 난해하다고 받아들여졌을 텐데 이제는 독자와 대중들의 ‘보는 눈’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예술적 맥락을 읽는 수준들이 그때에 비하면 올라갔거든요. 혹시 ⟨체인소 맨⟩의 레제(애니메이션) 편 보셨나요?
전체적으로 무난하고 친절한 연출이지만, 레제와 덴지의 전투씬에서는 역동적을 넘어서 멀미가 날 정도로 어지럽고 실험적인 연출을 사용했어요. 또 어떤 것들은 ‘이건 작가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네’ 싶은 것도 있거든요. 근데 이걸 상업 애니라고 내 놨네. 10년 전이었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이제는 아무도 거리끼지 않고 오히려 ‘와 이거 멋있다’, ‘이런 거 신선하다’ 라고 받아들이거든요. 그러니까 보편적 맥락, 상업적 맥락의 독자들도 경험이 쌓이고, 쉬운 것을 많이 보다 보니까 이제는 너무 어렵지 않은 선에서는 좀 어려웠으면 좋겠는 거예요. 그것이 어떻게 보면 신선함이고 그것이 재미고… 그렇게 느끼게 된 것 같네요.
그러니까 그 대척점이라는 개념도 이제는 모호해져서, 상업 애니라고, 상업 만화라고 하기가 애매하다는 거죠. 아까 말한 대로 경계를 굳이 나누자면 예술 만화는 질문하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이제 본질적인 것들을 제외하고는 다 의미가 없어졌고, 표상적인 것들은 무너져 내리고 있으니 완전히 원초적인 뼈대 하나만 잡고 가야 하는 것 같아요. 그것마저도 없다면 사실은 만화를 만화로 안 불러도 돼 버리는 수준이거든요. 그렇잖아요? 그게 그냥 제 이름이 돼 버릴 수도 있는 정도의 혼재라면 우리가 우리일 필요도 없는 지점이기 때문에 그것만큼은 그래도 지켜야 한다, 나는 구현성이고 나는 이것이다 정도만큼은 최소한 짚고 가지 않으면 정체성이 사라져 버리니까요. 우리가 그냥 완전히 혼재된 유기체가 돼 버리는 거잖아요.
Q5. 예술만화 매거진으로서 하고 싶은 것, 아니면 건드려 보고 싶은 영역이 있으신가요?
구현성 : 원래 ⟨아방가로데⟩는 훨씬 이전부터 하고 싶었어요.
재작년(2024)부터 시작했는데, 사실은 그 이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우선 자본적인 부분, 현실, 생계적인 부분 등 여러 가지 것들이 너무 저의 발목을 붙잡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어디 나서서 총대 메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예술만화 모임 ‘쾅’에서도 활동을 했었는데 저는 그보다 조금 더 실험만화의 맥락으로 가 보고 싶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 아카이빙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잠깐이나마 이런 것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새만화책’이 제게 보여줬던 비전처럼, 징검다리나 활로 같은 개념도 아니지만 최소한 끊기지는 않는 길을 누군가 만들어 주었으면 했어요. 사실 뾰로롱도 그런 맥락이긴 하죠. 실험 만화, 예술 만화에 대한 아카이빙은 너무 흩어져 있고 그 누구도 모르니까요.
회화에서는 전시를 함으로써 유의미한 전시든, 유의미하지 않은 전시든 간에 전시 서문이라는 형태로 아카이빙이 간략히 기록되고, 작가 노트로써도 기록되고, 그리고 전시장의 풍경이나 작품으로써도 기록되고, 그렇게 스스로 아카이빙 되는데. 갤러리나 대안공간 측에도 기록이 남고요. 하지만 이 대안만화, 실험 만화, 예술 만화는 주류 만화에 비해 팬도 되게 적고 보는 사람도 적은 편이잖아요.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기록이 없죠. 자기 스스로 정리해서 올리는 것이 다고… 그러니까 많이 안타까운 거예요. 아무것도 기록되질 않고 좀 더 복잡한, 어떤 개념에 의거해서 진행했던 작업들은 의도를 아무도 모르는 거죠.
그냥 만화적 재미, 드러난 것만 보고 넘어가는데 사실은 괜히 뭔가 실험한 것들이나 여러 가지 예술적 맥락도 뭐 뭐 뭐가 있는데 독자들은 모르고 작가 스스로밖에 모르게 되는 거죠. 그래서 만화 비평가도 굉장히 적잖아요. 아무것도 기록된 것도 없고 너무 층이 적고, 사실 예술사학적으로도 가치있는 것들인데.
저는 항상 경계에 있던 사람이기 때문에 예술의 다양한 풀을 좀 왔다갔다 하잖아요? 지금은 약간 다르지만 과거부터는 회화나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서 만화가 굉장히 저평가 받았어요. 어디 가서 만화 그린다고 하면 조금은 무시하는 맥락으로 바라봤는데 그만큼 만화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박혀 있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무시당했으니까 이래야 돼’, 하는 억하심정으로서가 아니라 예술적인 만화, 진짜 진짜 멋있는 걸 하고 당시 만화에 대한 인식 같은 걸 좀 부수고 싶더라고요. ‘만화 진짜 멋있네’, 이런 거. 피카소 뺨 때릴 정도의 예술적인 입지의 만화가 있다면, 그것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거죠.
Q6. 마지막 질문입니다. 아까 드렸던 질문의 연장선이기도 한데요. ⟨아방가로데⟩가 형식을 파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실험하는 것이 만화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 등에 유의미하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지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구현성 : 아까의 대답과 맥락이 섞여 있는 것 같긴 한데, 어떤 질문과 형식을 파괴하거나 해체하거나 하는 것은 제가 아방가로데의 다른 작가님들께도 말씀드린 취지처럼 작가의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에요. 창의성이란 것은 만화에서 서사를 구성하고 만드는 것이겠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듯 본질적인 질문, 나는 왜 작업을 하고 만화란 무엇이고… 이런 것들. 기존의 무언가에 질문하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아방가로데는 만화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 질문해 보고자 하는 잡지라고 생각해요.
그걸 각 작가들의 다양한 개성과 실험적 맥락이라는 화법으로 풀어나가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 만화가 아닌 대안만화의 성격으로서 이런 만화도 존재할 수 있고. 호소력과 설득, 흡입력이라는 만화의 ‘본질적 재미’를 가지고 가기 때문에 저희는 그냥 이미지의 병렬과 행렬만을 가지고 ‘이건 만화야’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