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025, 네이버웹툰 20주년이 지나온 길과 숙제들


IMF 이후 대규모 실직은 자영업 과잉을 낳았고, 아파트 단지와 동네 골목마다 대여점이 들어찼다. 1999년 기준으로 1만1천여개가 넘게 폭증했던 대여점과 6천여개가 넘는 대본소가 전국에 가득했고, 만화책은 빌려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독자들 사이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독자 입장에선 3천원 정도이던 책값은 300원이면 빌려볼 수 있고, 공급자 입장에선 1만부 이상의 판매는 보장이 되는 셈이었다. 당연히 반발도 있었다. 당시 대본소와 대여점을 강하게 비난하는 작가들과 대여점, 또 대여점에 책을 판매하는 출판사, 그들과 계약한 작가들이 갈등을 겪기도 했다.

말하자면 '기업형 제작사'와 '개인 창작자'의 갈등이 25년 전에도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갈등은 곧 사그라들었다.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독자들은 아예 온라인에서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는 편을 택했다. 대한민국 출판만화는 그렇게 파멸의 길로 굴러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 무렵 온라인에서 만화를 팔아보려는 시도도 존재했다. 온라인 만화 판매 플랫폼인 N4는 플래시 기반으로 '무빙툰'의 시초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문을 닫았고, 코믹스투데이 역시 자금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매각됐다. 물론 결제시스템도,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없으니 제대로 굴러갈리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IMF 이후 3년 안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나서, 당시 벤처기업이던 포털들이 웹툰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람들을 머무르게 하고, 수익화를 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방편이었다. ​다음에서 '다음 만화속세상'을, 그리고 네이버가 '네이버웹툰'을 시작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출판만화의 폐허 속에서 네이버웹툰이 문을 연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 2005-2009: 스포츠신문과 부동산사이트보다 원고료 적던 플랫폼

2000년대 초중반 당시 최고 원고료를 지급하는 곳은 스포츠신문이었다. 인터넷 짤로 한번쯤 보았을 유명한 네컷만화들이 연재된 것도 이 때다. 포털사이트는 미래를 보고 달렸지만, 현재의 작가들에게 줄 수 있는 돈은 없었다. 오죽하면 ⟨마음의 소리⟩ 1,000화 특집에서 조석 작가가 부동산 사이트에서 온 제안을 두고 고민했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 시절이었다. 온라인이 돈이 된다는 말은 허상처럼 여겨졌고, 수없이 문을 닫는 쇼핑몰에 대한 기사,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주문했는데 벽돌이 왔다는 괴담까지, 온라인은 믿을 수 없는 세계였다.

기본적으로 물성을 가진 책을 만들고, 그것을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시대에서 웹툰을 일단 보여주고 수익을 어떻게든 만들겠다는 말이 곱게 들렸을리 없다. 또, 출판계에 몸담았던 작가들의 입장에선 '선생님' 밑에서 문하생 생활을 하며 어렵게 기회를 잡아 데뷔하는 '등단' 시스템이 없는 웹툰에 대한 불신도 있었다. 실제로 2009년 전후로는 선배 작가들이 웹툰은 만화가 아니라며 비난하고, 무료로 웹툰을 보여주고 다운로드 받게 하는 시스템을 공격하기도 했다.

작가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보여주었던 것은, 출판만화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물론 운영의 관점에선 많은 원고료를 지급하고 대작을 가져오는 모험을 할 수 없었고, 출판만화에서 보여주는 장구한 이야기보다 짧게, 빠르게 화제성을 모을 수 있는 작품들이 필요했다. ⟨정글고⟩나 ⟨마음의 소리⟩와 같은 작품들이 연재된 것도 이 시기다.

* 2010-2013: 새로운 가능성, 유료화와 PPS

작가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2010년 말에서 2011년 사이, 작가들이 당시 사회 초년생이 받을 수 있는 임금에 준하는 원고료 수익을 올리게 됐다. 그러면서 장편 작품들이 등장했는데, ⟨덴마⟩, ⟨치즈인더트랩⟩, ⟨신과 함께⟩, ⟨신의 탑⟩, ⟨노블레스⟩, ⟨갓 오브 하이스쿨⟩과 같은 작품들이 등장한 것도 이 때였다. 당시에 보기 어려웠던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독자들은 환호했다. 흔히 오래 웹툰을 보아 온 독자들이 이야기하는 '좋았던 시절'은 주로 이 시기를 말한다. 초기 웹툰의 재기발랄한 작품들과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장편 작품들이 공존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화제를 모은 작품들이 두터운 팬덤을 형성하고, 네이버에는 트래픽을 제공했다. 이건 '네이버웹툰'이라는 부서의 예산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당시 네이버웹툰 편집부가 가지고 있는 힘은 '될성부른 작품'을 가진 작가를 알아보는 눈이었다. 그렇게 네이버웹툰은 PPS라는 시스템을 공개한다. 지금은 '파트너스 프로핏 쉐어'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페이지 프로핏 쉐어'였다.

작가가 트래픽을 모아온다면, 그렇게 모아온 트래픽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작가에게 나눠주겠다는 전략이다. 유료결제가 어떻게 일어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작가별 작품 페이지에서 발생한 수익을 나누겠다는 발상은 나스닥 상장사가 된 네이버웹툰에도 유효하다. 네이버웹툰이 세운 전략 로드맵 상에서 꼽은 '미래 먹거리'의 대표주자는 유료결제가 아니라 광고수익과 IP확장이다.

또 하나, 이 시기에 모바일 전환이 급속도로 일어난다. 온라인 문화에서도 이 변화는 매우 중요한데, 처음엔 텍스트로 시작해 점차 이미지로 발전하고, 2010년대 초반 팟캐스트를 비롯한 음성+일부 영상 콘텐츠가 대유행하던 시기였다. 아프리카 TV(현재 SOOP), 판도라 TV등이 유행했고, 디시인사이드의 합성필수갤러리에서 이미지로 만들어진 '짤' 뿐 아니라 영상으로 만들어진 짤방과 합성 콘텐츠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모바일로 폭발적인 전환이 일어나면서 직선형으로 성장하던 컴퓨터 성능(컴퓨팅 파워)이 갑자기 줄어든다. 무선 인터넷이 느린 3G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일어난 변화는 네이버가 1위 플랫폼으로 위치를 굳히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네이버가 조금 더 빠른 모바일 전환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한국은 스마트폰 전환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일어난 나라였고, 여기서 '모바일 환경'에 적합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새로운 규범이 될수도 있음을 의미했다.

* 2014-2019 : 해외 진출을 위한 '맨땅에 헤딩'

2014년, 네이버웹툰은 해외진출 원년을 선언한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글로벌 스마트폰 보급률이 PC 보급률을 넘어선 해였다. 우리 모두가 겪어봤다시피, 이 보급률은 이후 11년간 단 한번도 역전되지 않았다. 네이버웹툰은 라인이 빠르게 보급되어 있던 일본을 기점으로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에 법인을 설립하고 미국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시기를 웹툰 업계 관계자들에게 물으면 "네이버웹툰이 맨땅에 헤딩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당시 실무를 보았던 임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책상에 앉아서 리서치 하는 것 부터 시작해 밖으로 나가 독자들에게 길거리 인터뷰를 했고, 관계자 인터뷰와 전문가 인터뷰에 이르는 과정이 이어졌다. 당연한 것이긴 한데, 정말 미국 독자들에게 몸으로 부딪혀 알아낸 것들이 도움이 된 셈이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던 시기, 네이버웹툰은 2018년 11월이 되어서야 미국에서 유료화 모델을 도입했다.

이 시기, 국내에서는 플랫폼이 난립했다. 수많은 플랫폼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거나 합쳐졌고, 작가들과의 갈등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웹툰과 관련된 제도 개선이나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수립되고 정립되거나, 아니면 도서정가제와 같은 새로운 갈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 2000-2025 : 상장과 숙제들

코로나19를 맞이하면서 웹툰을 비롯한 디지털 콘텐츠는 폭발적 성장기를 맞았다. 규모가 작았기에 매년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이제는 '산업'이라고 부를 정도의 크기에 다다르는 시대가 됐다. 네이버웹툰은 연간 8천억원 규모의 매출을 내는 기업으로 성장했고, 2024년 나스닥에 상장했다. 그동안 네이버웹툰은 시장의 1인자로 공고히 성장했다.

만화가협회는 네이버웹툰 20주년 축하말에서 "웹툰 종주국의 명성을 지켜가는 작가들의 동반자이자 든든한 지원군으로서 앞으로도 눈부신 활약을 기대한다"며 "웹툰을 사랑하는 독자님들께 좋은 작품으로 보답할 수 있도록 작가들의 창작환경 개선에도 힘써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뼈있는 메시지를 남겼다. 시장은 확대되었지만, 개인 창작자들이 느끼는 부담은 오히려 늘었다. 물론 만화가는 아주 어려운 직업이지만,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시장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플랫폼에서 이걸 어떻게 관리할지가 첫번째 숙제다.

두번째는 내부에 있는 노동자들이다. 외부자에게도 들려오는 이야기는 "상장 이후 매출을 위해 쥐어짜이는 느낌"이라는 내부자들의 목소리다. 즐거운 직장을 표방하는 네이버웹툰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갈등 역시 숙제다. 자회사 노동자들의 처우, 웹툰과 웹소설 담당자들의 노동환경과 처우 역시 분명히 논의해야 한다.

세번째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작품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다. 편집부를 강화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고, 큐레이션을 강화하는 방식과 팬덤을 키우는 방식 등이 논의될 수 있는 방안이다. 일단 네이버웹툰은 편집부 강화보단 큐레이션과 팬덤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보다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그 다양성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내비게이션을 만들어 줄 것인지는 여전히 숙제다.

양적 성장을 꾀한 것이 지난 20년이라면, 양적 성장은 물론 질적 성장 역시 잡아야 하는 셈이다. 당연히 큰 기업이 되었으니 큰 책임이 따른다. 디즈니와의 협업부터 워너 애니메이션과 협업, 그리고 지금까지 양적 성장은 꽤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그렇다면 세가지 숙제, 모두 질적 성장에 관한 키워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남았다.

지난 20년,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온 네이버웹툰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동안은 외부의 요인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성공해 온 네이버웹툰은 과연 어떻게 새로운 파도를 넘을 수 있을까. 또, 이제는 자신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파도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입장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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