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너툰"과 "만화경", 무엇이 달랐나
지난 1월 16일, 피너툰이 갑작스럽게 서비스 종료를 알렸습니다. 피너툰은 2015년 운영을 시작한 플랫폼으로, 지난 2018년부터는 넥스큐브가 운영을 맡아 독점작 위주의 작품 구성을 보여주던 플랫폼으로, 2019년부터는 넥스큐브가 아무타스에 인수되며 메챠코믹과의 연계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기도 했죠. 아무타스는 일본에서 ‘메챠코믹’이라는 대형 만화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이고, 인포콤(Infocom)이라는 기업의 자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2024년, 세계 최대 사모펀드중 하나인 블랙스톤에 인수되었습니다. 이때 블랙스톤은 “현재 메챠코믹의 오리지널(독점)작품 비율이 10%에 불과한데, 오리지널 작품을 강화하겠다”라고 밝힌 만큼, 독점작을 위주로 사업을 영위해온 피너툰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습니다.
피너툰 운영사인 넥스큐브 관계사 도식
그러나 이런 기대도 잠시, 돌아온 것은 갑작스러운 종료 통보였습니다. 그런데, ‘해외 자본’에 의한 ‘갑작스러운 운영 종료’ 통보는 이전에도 한번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만화경인데요. 만화경의 사례와 피너툰의 사례는 뭐가 달랐는지 짚어보기로 하죠.
* ① 공통점 : 갑작스러운 종료 통보
먼저 만화경은 지난 2023년 7월 19일, 만화경 서비스 종료를 통보받았습니다. 모양은 배달의 민족으로부터 통보받은 것이지만, 사실상 독일계 모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로 부터의 통보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DH가 만화경 서비스 종료를 통보한 건 우리 시각으로 7월 19일 오전이고, 그날 오후 작가들에게 먼저 공지가 나갔습니다. 2023년 2월 유료 서비스인 ‘콩’을 시작했고, 5월에는 신규 개발 인력을 채용했던 만큼 향후 사업 계획이 착착 진행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사업부문 축소’도 아니고, ‘사업 종료’라는 결과를 받아든 거죠. 당시 우아한형제들은 “지난 4년여 간 독립된 플랫폼 생태계 구축에 힘써왔지만, 기존 과점 플랫폼의 쏠림현상이 가속화되며 시장 창출 기회가 제한적인 것으로 판단해 서비스를 종료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신사업이 진행중이고, 결과도 1분기밖에 확인하지 않았는데 종료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피너툰이 정말로 아예 몰랐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몰랐을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정황들은 있습니다. 피너툰은 서비스 종료를 알리기 전 세일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어차피 환불해줘야 하는 금액이라면, 서비스를 종료하더라도 토해내야 하는 금액입니다. 피너툰은 지난 2022년 20억원, 2023년 30억원 적자를 보며 적자폭이 점차 커지는 상황이었는데, 어차피 사업을 종료하고 법인청산을 통해 처리할 거라면 환불에 소요되는 행정력을 생각했을 때 이벤트를 안 하는게 이득일 겁니다. 한두명도 아니고, 전부 환불하려면 거기에 들어가는 노력이 적지 않을테니까요.
* ② 공통점 : ‘돈 안되는 사업 접어라’ 효율성 앞에 무너진 예술
또, 여기서 자본의 논리가 끼어든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물론, 플랫폼 사업은 돈이 많이 들고, 사업인 이상 돈을 벌어야 하는 사업임은 분명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무타스는 경제전문매체인 비즈워치에 “2023년 이후 경쟁환경 심화로 사업실적이 악화되고 있었다”는 점을 종료의 이우로 꼽았습니다. 또 “한국 웹툰 유통 플랫폼 사업의 시장환경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경영환경이 어렵고 사업성장이 어렵다고 판단, 한국 웹툰 플랫폼 사업에서 철수하고 회사를 해산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습니다.
‘사업적 효율성’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플랫폼 비즈니스는 오랜 기간 버텨내는 것이 미덕인 사업이기도 하죠. 10년간 꾸준히 사업을 영위했던 피너툰이라면 충성독자가 있고, 이 충성독자를 바탕으로 새로운 전략을 짜서 독자를 유치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플랫폼 전략이기도 합니다. 독점작 위주의 플랫폼 전략을 짰다면 글로벌 유통망을 이용한 시너지를 실험해볼 법도 한데, 이런 시도 없이 플랫폼이 문을 닫게 되었다는 것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이건 만화경의 경우에도 마찬가집니다. 만화경은 취재를 통해 확인해 보면 당시 ‘콩’을 통해 기대했던 분기 목표치를 달성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과를 내기 시작했고, 성장세를 확인할 틈도 없이 서비스 종료를 알리게 된 건 정말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쉽습니다. 자본의 효율성을 앞세운 논리에 아예 서비스가 사라지게 된 거니까요. DH와 아무타스와 블랙스톤, 이 세 곳의 공통점은 ‘답을 정해놓고 이미 결과가 나온 곳만’ 살리겠다는, 예술과 창작물의 가능성과 성장을 자본의 증식이라는 도식으로 해결하려고 한 결과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 ③ 차이점 : 연착륙 기간, 업계에 대한 존중
다만, 이 두 플랫폼의 종료에는 큰 차이점들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연착륙 기간입니다. 2023년 7월 19일 첫 공지를 내고 난 이후, 만화경은 8월 정식 공지를 내고 종료 일정을 2024년 5월 31일로 알렸습니다. 그때까지 어떻게 플랫폼을 연착륙해 종료시키겠다는 로드맵도 내놨죠. 완결을 원하는 작가들이 완결을 지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고,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겠다는 전략을 낸 겁니다.
하지만 1월 16일 공지를 내며 2월 28일 종료를 알린 피너툰은 기껏해야 설 연휴를 제외하면 6주 정도의 시간이 남습니다. 8월 초를 생각해도 9개월을 넘는 시간을 알린 만화경과는 달리, 한달 반 정도의 시간만 주어진 거죠. 완결을 하려고 해도, 이미 공개된 구작을 다른 플랫폼으로 옮기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당시 만화경에서 업로드한 종료 이벤트
종료 과정에서 만화경은 PD와 작가들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화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피너툰은 갈등을 봉합할 시간도 없이 서비스가 종료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되면 작가와 피너툰의 임직원이 제대로 갈등을 해결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표면상으로는 개인간의 갈등이지만, 작가들이 회사를, 파트너를 제대로 믿을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큰 손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피너툰은 연재하는 만화가 어떻게 종료되어야 하는가, 플랫폼은 사업을 어떻게 종료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내놓은 만화경의 사례가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전 사례들에서 ‘그래선 안된다’고 합의한 것을, ‘다시 그래도 되는’ 것으로 만들 때, 당사자들은 불안과 분노로 답하게 마련입니다.
* ④ 차이점 : 다른 플랫폼에서 작품 연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했는가
앞서 언급한대로, 만화경이 종료할 당시 연재중인 작품은 다른 곳에서 서비스를 이어갈 수 있게 만화경이 직접 연락을 받고, 작가들과 함께 협상했다고 알려져 있죠. 실제로 다양한 플랫폼으로 옮기기도 했고, 또 끝까지 만화경에 남아 서비스 종료를 지킨 작품들도 있습니다. 그 기간이 아무리 짧게 잡아도 반년은 되죠. 만화경은 '플랫폼 계약 종료와 함께 작가님들의 작품의 계약은 종료된다'고 못을 박고 종료절차에 돌입했습니다. 그 이후 다른 플랫폼에 이관작업을 시작했죠.
피너툰을 운영하는 넥스큐브와 아무타스는 일단 "피너툰 사이트에 작품을 제공해준 작가, 제작사, CP기업 등 거래처에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면서 "피너툰은 작가와 작품을 수용 가능한 여러 기업과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는데요. 업계 사정이 어려운 지금 이게 가능할지는 미지수입니다. 또한 웹툰의 특성상 일단 먼저 공개된 작품이 어떻게 협상이 진행될지도 알 수 없구요. 때문에 기존 플랫폼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것이 중요한데, 기간이 이렇게 짧은 상황에서 일단 ‘털어내기’에 급급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다른 플랫폼들 역시 일단 서비스가 가능할지 타진하고, 작품을 선정하고, 협상하는 기간이 필요한데 그 고민의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심지어 설 연휴까지 끼어서 사실상 5주, 한달여 정도밖에 기간이 없습니다. 이 기간 안에 작품을 살피고, 회의 후 결정하고, 통보하고, 다시 피너툰이 받아서 작가에게 알리고, 조건이 오가며 협상하고, 최종적으로 마무리 짓기까지는 시간이 너무 짧죠. 이 업무를 전담할 TF를 세팅하기에도 쉽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너툰의 운영사였던 넥스큐브의 욕망도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넥스큐브는 피너툰을 손망처리하고 법인해산을 하면 그만이지만, 그 가운데서 자신들이 이익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을 소위 ‘건지려고’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넥스큐브가 유통을 담당하려고 할텐데, 작가들이 피너툰을 접은 운영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인계가 잘 이루어져서 다른 플랫폼에서 문제없이 이어갈 수 있다면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될 겁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무엇보다 작가 입장에서는 갑작스런 플랫폼 종료에 따른 계약해지 귀책사유가 사측에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질지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오갈 테니 말이죠.
* ⑤ 차이점 : 소장, 어떻게 할 것인가
또 하나 결정적인 차이점은 소비자인 독자들에 대한 문제입니다. 현행 제도상 ‘소장’이라고 되어있더라도 플랫폼이 서비스를 종료하면 작품을 볼 수 없습니다. 사전에서 ‘소장’의 의미는 “자기의 것으로 지니어 간직함”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플랫폼이 사라질 때, 소장한 작품 역시 사라지는 건 문제가 있죠. 이 부분에 대한 제도는 아직 미비한 상태입니다.
만화경의 경우는 소장이 아니라 유료분을 미리보기 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고, 애초에 유료판매 시작 반년만에 서비스 종료를 알렸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피너툰은 ‘독점작 소장’이 주력이었던 만큼 많은 혼란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작가와 플랫폼 뿐 아니라, 독자들의 플랫폼에 대한 믿음, 그 중에서도 중소플랫폼이 언제 종료할 지 모른다는 불안은 웹툰계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겁니다.
‘플랫폼’이라는 성공의 가능성이 있는 만큼, 실패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걸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종료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분명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종료해야 적절할지,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지 이미 논의한 바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사실 이건 비단 웹툰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어떻게 사업 파트너를, 고객을 대하는가가 핵심이죠. 앞으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리고 서로 이해하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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