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효과', 산업을 이끄는 힘 - 레드세븐 이현석 대표

어떤 출판사가 있었다. 건실하고 업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회사다. 이 회사가 한 때 위기를 맞이했다. 새롭게 부서 전체의 리더가 회사 전체를 이끌 새로운 강력한 작품을 육성하고자 했다. 당시, 새롭게 연재를 시작하여 많은 인기를 모으기 “시작”한 신인 작가의 작품에 가능성을 느끼고 그 작품을 전력을 다해 지원했다.
같은 시기. 업계의 실력자들이 모인 어느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가 있었다. 우수한 작품을 만들었지만, 큰 실적을 내야 회사가 안정될 수 있었다. 출판사와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한 작품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이 작품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여 일본 콘텐츠 역사를 새로 쓰는 거대한 성공을 거뒀다. 당연히 두 회사 모두, 위기를 벗어나 탄탄한 반석 위에 올라섰다. 이제 이 출판사를 두고 누구도 일본 만화업계의 '메이저 거대기업'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주긴지 중심의 시장에서 월간지 중심의 잡지 라인업으로 매출을 기록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평가와 달리, 이 기업은 업계 전체에서 2위로 부상한다. 애니메이션 회사는 성공을 토대로 자사 빌딩이 생겼다.

'만화'같은 성공담이다. 이 작품은 아라카와 히로무 선생의 <강철의 연금술사>(鋼の錬金術師)다. 이 작품은 원래 만화로 인기를 얻고 있던 작품이긴 했다. 하지만, 본즈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2003년 첫 방영 시 시청율이 6.8%, 2005년 TV 아사히가 실시한 “전국 애니메이션 인기 투표”에서 온라인 투표 1위를 차지했고, 2006년 투표에서도 온라인 1위를 연이어 기록할 만큼 팬덤의 지지도가 높았다. 이런 인지도 상승은 원작 만화에 대한 관심을 크게 높였고, 당연히 원작 판매 상승으로 직결되었다.
참고로 당시, 강철의 연금술사 DVD판매량은 텔레비전 시리즈(1기)를 수록한 상품만으로도 8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극장판은 17만장을 판매했다. 단행본은 당시 전체 13권이 출시되었으니, 1권당 3.7만장 이상의 대 히트를 기록했다. 당시 시장에선 1권당 3000장만 팔려도 히트했다는 평가가 붙던 시기다. 이 애니메이션 신화가 단행본 판매를 견인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2003년 본즈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면서, 단행본 판매량이 급격하게 상승한다. 2007년 3월, 일본 내 단행본 판매는 누적 2700만부, 2008년 3월에는 3000만부를 돌파했다. 전세계 판매실적은 8천만부에 육박한다. 소위 말하는 '급이 다른' 작품이 된 것이다. <강철의 연금술사>의 성공사례는, 만화로 원천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를 2차로 확장하여 상호 상승효과를 불러 일으킨 극히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1. 오래된 일본의 만화-애니메이션의 공생관계

일본만화와 애니메이션의 공생관계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과거 일본 장편 텔레비전 방영 애니메이션이 테레비 망가テレビマンガ(텔레비전 만화)라고 불리던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만화의 신이라고 불리던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 <철완 아톰>역시 1952년 만화로 출간되었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일본 후지텔레비전으로 방송된 것이 1963년. 총 193화에 걸쳐서 방송된 이 작품은 일본 최초의 본격 텔레비전 연속 방영 애니메이션이다. 이후, 만화로 개발된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방송하는 체제는, 이후 <에이트 맨>, <사자에 상>등의 연속적인 성공을 바탕으로 완전히 정착되어 간다.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은 일본 국내의 관련산업 전반의 매출을 포함할 경우 2.93조 엔(한화 약 27조 4,300억원)정도로 추산된다. 만화 산업은 2024년 현재 매출기준으로 7조원 정도로, 애니메이션에 비해 작다. 이런 산업 체제 안에서 애니메이션이 만화매출을 폭발적으로 신장시킨 사례는 너무나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는 <귀멸의 칼날>이 애니메이션 방영 전인 2018년 350만부 정도 팔리던 것이, 2019년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는 기간동안 1,205만부에 도달했다. 이후 2021년에는 누적 1억 5천만부를 돌파하며 판매량이 30배 가까이 치솟았다. <주술회전>의 경우 2020년 5월 누적 발매부수가 450만부이던 것이 애니가 방영 된 이래 2023년까지 누적 부수가 8,000만부에 도달한다. <귀멸의 칼날>은 1년만에 3배, <주술회전>은 3년만에 17.7배 판매량 신장 효과를 만든 셈이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는 2015년 연간 219만부 판매를 보였지만, 2016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인기작이 되면서 2024년 누적 1억부를 돌파한다. <스파이 패밀리>의 경우는 2021년 애니메이션 방영 전 성적이 1,205만부로 히트작이었지만, 2022년 애니메이션 방영 후에는 3,800만부로 판매부수가 폭증했다.

'원래 많이 알려진 인기작들만 효과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애니메이션 이후 널리 알려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케이온!>은 "망가 키라라"라고 하는 비교적 마이너 잡지에 연재되던 만화다. 단행본 1권은 34,000부 정도, 2권은 41,000부 정도가 판매 되었다. 그러나 2009년 교토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작품 방영 이후, 총 4권까지 250만부가 팔리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초판본에는 10배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마이너 잡지였던 "망가 키라라"역시 인쇄부수가 2배 증가했다. <메이드 인 어비스> 역시, 온라인 상에서 마이너 잡지에 연재되던 만화였지만 2017년 애니메이션 방영후 2023년 기준으로 300만부를 넘는 판매기록을 세웠다.
이렇듯 일본 만화업계에 있어서 원천상품인 만화를 개발하고, 이를 결정적인 수퍼 IP로 개발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장편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니메이션 업계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각 유명 출판사의 히트작에는 경쟁하듯이 애니메이션 기획들이 몰려든다.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잠재적인 최소한의 시청자가 확보된 만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리스크 관리 입장에서 합리적이다. 더해서,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가하는 스텝들도 만화콘텐츠가 미리 있으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한결 수월하다. 작화든, 시나리오의 전개든 만화라는 좋은 매뉴얼이 있다면 이 원천 콘텐츠의 장점은 더 살리고 단점은 배제하는 식으로 제작을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 한국 웹툰에게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통과점 - 애니메이션을 통한 산업확장
최근, 코로나 붐이 꺼지면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던 한국 웹툰 산업 전반에 대해서 비관적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필자는 다른 칼럼에서 이런 우려의 목소리 - 위기론은 너무 가파른 성장세가 이제 끝나고 성숙기에 들어선 산업에서 당연히 제기되는 의견이라고 말 한 적이 있다. 웹툰 산업이, 혁신적 제품이 초기시장에서 주류 시장으로 넘어갈 때 발생하는 큰 격차 - 캐즘(Chasm, 신제품, 신기술이 안정화 단계 전에 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상) 단계라 분석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것은 특히, 7조원에 달하는 시장 상당부분이 우철 페이지/단색 만화만 소비되는 일본 시장에서 적용되는 개념이다. 이 캐즘에 가까운 단계를 넘어서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외연 확장을 위한 잠재적 소비자의 폭발적 확장 수단 -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애니메이션의 전개가 여타 극장용/플랫폼 용 실사 영화등 보다 메리트를 가지는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소비자들에게 노출되는 기간이 압도적으로 길다. 텔레비전 장편 애니메이션은 최저 12화 1쿨로 만들어진다. 인기가 있을 경우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작품 제작이 이루어지며, 이 경우는 몇 년간 이어질 때도 있다. 반면 실사 영화나 OTT를 전재로 한 드라마들은 빈지 워칭 경향을 고려하여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노출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회사의 홍보비 지출과 노출 노력등이 짧은 기간에 끝나는 편이다. 일본에서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이, 작가와 출판사에게 실질적인 큰 소득을 주지는 않는다는 인식이 고착되어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둘째로, 일본 시장 등지에서 굿즈 등 추가상품을 전개하기 쉽다. 일본의 방대한 애니메이션 산업은 또 거대한 3차 시장을 가진다. 편의점에 팔리는 캔커피부터 매니아를 위한 고가의 피규어, 극단적인 경우는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작품 관련 굿즈 연계산업이 구축되어 있다. 실사 드라마나 영화가 확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물론, <스타워즈>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같은 사례는 있다. 그러나, 이쪽은 가히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들여야 가능한 분야다.
그런데, 최근 이런 “성공적인 장편 애니메이션 전개사례”가 드디어 탄생했다. 작품 <나 혼자만 레벨업>의 애니메이션이다.
3. 기록적인 성공 : <나 혼자만 레벨업>

<나 혼자만 레벨업>은 2018년 카카오 페이지를 통해서 연재가 시작된 작품이다. 웹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고 장성락 (DUBU)작가의 압도적 작화 퀄리티와 박진감 있는 연출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해당 작품은 일본에도 수출되어, 한국 웹툰을 주력상품으로 다루는 플랫폼 픽코마가 외연확장을 이루어 지금 위치를 다지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기도 했다.
웹툰 기준 전세계 누적 조회수는 143억회 이상. <나 혼자만 레벨업> 애니메이션은 2024년 1월 7일부터 3월 31일까지 제1기가 방영되었으며, 총 12화로 구성되었다. 일본의 TOKYO MX를 비롯해 한국의 애니플러스, 애니맥스 코리아 등 여러 방송사를 통해 동시 방영되었고, 크런치롤, 넷플릭스, TVING, 웨이브, 왓챠, 라프텔 등 주요 OTT 플랫폼을 통해서도 전 세계에 공개되었다. 제2기인 <나 혼자만 레벨업 Season 2. -Arise from the Shadow->는 2025년 1월 5일부터 3월 30일까지 총 13화로 방영되었다. 제작사는 <소드 아트 온라인> 시리즈, <아노하나>, <일곱개의 대죄>등 작품을 맡아 성공시킨 유명 제작사 A1픽처스. 감독은 액션연출의 대가로 알려진 나카시게 슌스케 씨다.
<나 혼자만 레벨업> 애니메이션은 전례 없는 글로벌 흥행을 기록하며 애니메이션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크런치롤에서는 2024년 1월 출시 이후 그 해 가장 인기 있는 타이틀이 되었으며, 2025년 1월에 방영된 시즌 2 역시 영어권 국가, 유럽, 중동 및 북아프리카 등 모든 크런치롤 서비스 지역에서 차트 1위를 차지하며 1분기 가장 인기 있는 시리즈로 등극했다. 특히 2025년 3월까지 Crunchyroll에서 614,300건 이상의 사용자 리뷰를 기록하며 12년간 누적된 <원피스>의 리뷰 수(600,500건)를 넘어섰다. 일본 Amazon과 ABEMA에서도 일간 차트 1위를 기록했으며, 홍콩, 마카오, 대만, 동남아시아에서도 1월 출시작 중 최고 인기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기록적인 성공은 작품의 인기가 더 이상 일본 내 성과에만 의존하지 않음을 입증하며, 세계화와 소셜 미디어 마케팅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통념과 달리 의외로 일본에서의 만화 애니메이션화는 애니 흥행이 직접적으로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다. 시청자 확장으로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원작인 만화매출이 늘어나는 구조다. 즉, 애니메이션화에 있어 원작 사용료 자체는 저렴한 편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이 모델에서도 특필할 만큼 성공했다. 일본 픽코마의 경우 <나 혼자만 레벨업> 애니메이션 방영 기간 중, 지속적으로 1위 자리를 지켰다. 작품이 완결된 상태이고, 매일같이 20화 분량을 갖춘 신작이 투입되는 사정을 고려하면 엄청난 흥행 몰이를 한 셈이다. 2023년 1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애니메이션 방영 후 한 달간 주요 플랫폼의 웹툰 조회수는 크게 상승했다. 카카오페이지 태국은 5,490만 뷰에서 6,040만 뷰, 대만은 1,820만 뷰에서 2,170만 뷰, 인도네시아는 무려 1,960만 뷰에서 3,430만 뷰로 크게 뛰었다. 미국의 웹소설 플랫폼인 Webnovel에서도 1억 1,020만 뷰에서 1억 1,710만 뷰로 조회수 증가가 관찰되었다. 픽코마(일본), 콰이칸(중국), 타파스(미국), 태피툰(미국), 포켓코믹스(미국) 등 다른 플랫폼에서도 좋아요, 조회수, 구독자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전체적으로 애니메이션 방영 후 한 달 만에 약 4,800만 건의 글로벌 웹툰 조회수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종이책 판매량에서도 애니메이션의 효과는 두드러졌다. D&C미디어는 일본 콘텐츠 기업 카도카와로부터 22만 부의 단행본 재판 주문을 받았으며, 3개월 내 완판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미국에서는 <나 혼자만 레벨업> 단행본이 2025년 3월 Circana BookScan 성인 그래픽 노블 차트 상위 20위 중 5개 순위를 차지하며 강력한 판매 실적을 보였다. 아마존의 <Solo Leveling Vol. 1> 평점 개수도 한 달 만에 176개 증가하여 종이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수치들은 애니메이션이 웹툰 IP의 글로벌 마케팅 및 전환을 위한 궁극적인 도구임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애니메이션은 고품질의 시각적 '예고편' 역할을 하여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시청자들을 웹툰 독자로 전환시키고, 원작 IP의 독자층과 수익원을 웹툰 자체로는 달성하기 어려웠던 수준으로 크게 확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일본 만화업계에서 일찍이 자리잡은 모델을 바탕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4. <나 혼자만 레벨업>이 혼자만 레벨업하지 않으려면
<나 혼자만 레벨업> 애니메이션의 방영과 그 결과는 한국 웹툰 산업에 있어 명백한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냈다. 애니메이션 전개를 통해서, 전 세계적으로 기록적인 시청률과 높은 평점을 기록하며 원작 웹툰의 조회수와 판매량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자세히 기술하지 않은 게임화를 통한 큰 성공 등으로 다양한 미디어 믹스 확장으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다.
이른바 '슈퍼 IP'로서의 가치를 증명했다. 일본에서 만화잡지가 쇠퇴할 것이라는 2000년대 초기. 결국 이것을 막아낸 것은 수많은 수퍼 IP의 등장들 이었다. 이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일본 내부에 막강하게 구축된 만화 원작-애니메이션을 통한 2차 전개 - 굿즈나 연극 무대 등의 3차 전개 체제 덕분이었다. 이런 원천 콘텐츠의 확장은 지금 웹툰 확장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다.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정이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있어서도 웹툰 콘텐츠의 애니메이션 전개와 성공은 큰 의미를 지닌다. 지금 일본 시장 안에서는 특정 회사들의 매체에 연재된 만화들을 애니로 만들어 성공하는 모델이 다변화 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체제의 진화가 이뤄지지 않는 안정화는 또다른 의미의 고착과 퇴보를 의미하니까. 어렵게 말했지만, 일본의 산업체제 바깥에서 들어온 외부요인으로 의한 진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성공은 기쁜 일이지만, '하나의 사건'으로만 자리매김해선 안된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성공은 한국 웹툰이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전략적 기둥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입증하며, 앞으로 더 많은 한국 웹툰 작품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 <재혼 황후>는 디즈니+에서 실사 드라마로 각색될 예정이며, <입학 용병> 애니메이션도 발표되었다. '한국 웹툰의 레벨업'은 이제 시작이다.